퇴임 앞두고도 ‘민주주의’ 아쉬워했던 대통령 SYA 노무현2012/01/04 11:27
퇴임 앞두고도 '민주주의' 아쉬워했던 대통령
'그후 4년'을 내다본 2008년 1월3일 노무현 대통령 신년인사회 연설
"저와 우리는 물러가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말하자면 이름을 스스로 붙이기가 미안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노무현 시대는 물러가고 이명박 시대가 옵니다. 참 기뻐하는 사람은 많고 또 그만큼 많지는 않지만 섭섭하고 불안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새로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꼭 성공하기를 바라고, 우리 국민들이 오늘 가지고 있는 그 기대와 소망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퇴임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던 2008년 1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재임 중 마지막 신년인사회를 가졌다. 3부 요인 및 헌법기관 차관급 이상, 정당 주요인사 등 270여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날 노 대통령은 별도의 연설문 없이 진행된 짧지 않은 신년인사말을 통해 참여정부 5년의 회고와 평가, 새 시대에 대한 바람을 피력했다.
정권교체 이후, 대통령은 무엇을 봤을까
이날 노 대통령의 인사말을 다시 꺼내보는 이유는 지난 4년여 간의 현실과 많이, 대단히 많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잠시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한 달 전인 2007년 12월, 정권 교체라는 결과를 낳으며 17대 대선이 끝났다. 임기 말 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20%대에 머물렀다. 실제로 2008년 1월 1일 각 언론이 쏟아낸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노무현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이나 분야를 묻는 질문에 '잘한 것이 없다, 32.0%'(내일신문) '없거나 모른다, 29.9%'(한겨레)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나마' 평가 받는 부분이 민주주의 진전, 정치개혁과 같은 사안이었다. "참여정부 최고의 치적으로 꼽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연합뉴스 2008.2.22)이며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를 자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기득권, 권위주위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상과 단절함으로써 한국사회의 '형식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세계일보 2008.2.25)는 말처럼,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진보는 그래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대선 결과에서 보듯, 관심은 '경제'로 모아졌다. 새 정부가 가장 시급히,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경제성장 65.9%'(한국일보), '경제 활성화 63.0%'(문화일보)와 같이 모두 경제였다. '양극화 해소 및 복지확충 14.0%'(문화일보)은 한참 뒤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먼저 참여정부 5년을 민주주의, 경제, 복지, 안보로 나누어 회고하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관련 대목을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민주주의 개혁 과제를 5년 동안 내내 했는데, 지나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5년 내내 특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유착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득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특권과 유착은 싸울 만한데, 기득권과의 싸움에서는 가짓수가 너무 많아가지고 안 걸리는 데가 없었습니다. 기득권에는 온갖 기득권이 다 있어서, 진보의 기득권도 있고, 서민의 기득권도 있고, 노동조합의 기득권도 있습니다. 5년 동안 내내 어떤 경우에는 전쟁처럼, 어떤 경우에는 싸움처럼, 또 어떤 경우에는 씨름처럼 특권과 반칙과 유착과 기득권과의 갈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컸던 것이 언론과의 갈등이었습니다.…정말 힘들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정부 평가는 사실과 지표를 가지고 하자'고 강조하며 아쉬움과 우려를 이어갔다. 아쉬움의 첫 머리는 예상 외로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도 참여정부에서 평가 받는 분야가 민주주의 진전이었는데, 도리어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와 복지를 말하다
"요새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아무 주문이 없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이러는 거 같아요. 민주주의 그만하면 됐고, 경제가 엉망이다, 경제를 꼭 살려야 된다. 복지는 어떤가요? '경제만 잘되면 잘 안 되겠나?' 이게 오늘의 답인 것 같습니다. 평화? '그건 좀 봅시다', 그 정도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 컨센서스(Consensus)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데,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왜 일찍 만족하고 일찍 포기해 버릴까, 이런 답답함이 있습니다. '경제'는 내가 보기엔 문제가 있지만 이 정도면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멀쩡한 경제인데 왜 자꾸 살린다고 할까. 죽은 놈이라야 살리는 것이지 살은 놈을 왜 살린다고 하는지 납득을 못 하겠습니다."
임기 5년을 마무리하는 그때 대통령은 경제와 복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복지,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이 대개 관심이 없습니다. 밥만 많이 먹고 힘만 세지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피돌기'가 잘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배만 불룩하게 나온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만 커진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피돌기가 잘되고 온 몸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그것이 건강한 경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부수적인 정책, 경제정책에 따라붙는 그런 쪼가리 정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경제정책과 대등하게 일체화된 그런 정책이고 전략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지금 어떻든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졌으니까, 앞으로 복지문제에 대해서 저는 걱정이 많습니다. 어쨌든 모로 가나 옆으로 가나 앞으로 5년 동안에 우리는 큰 실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경제가 특효처방만 하면 쑥 크는 것인지는 우리가 실험해야 될 것이죠? 토목공사만 큰 거 한 건 하면 우리 경제가 사는 것인지도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검증을 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만 해서 경제의 성장률만 올라가면, 수출만 많이 되면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도 검증을 해야 될 것이고, 또 그것만 하면 복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지도 앞으로 우리가 검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담아
앞서, 당시 언론들이 전한 여론을 환기해보자.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5년에 대한 평가는 박했고 대부분의 바람은 경제와 성장에 가닿아 있었다. 복지는 뒤편이었고 민주주의는 '그 정도면 이제 됐다'고들 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아쉬움과 우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지난 4년의 세월을 돌아보는데 2008년 1월 노 대통령의 새해인사를 다시 꺼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날 대통령의 신년인사말은 거듭, 민주주의에 대한 당부와 국민을 향한 믿음으로 마무리됐다.
"어떻든 무엇을 하든 간에, 민주주의를 좀 더 내실 있고 성숙하게 운영해 나가는 그런 대한민국이 될 때 경제는 큰 어려움 없이 잘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년에 여러 어려운 전망들이 있습니다만 지난 5년 동안에 어려운 전망 없었던 해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리가 경상수지 적자가 날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결국은 흑자를 냅디다. 저는 한 번도 그 흑자를 대통령 공이라고 말한 일 없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들을 존경할 뿐입니다. 국민들은 정말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이 좀 어렵다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우리 국민들이 너끈하게 극복해 주실 것으로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큰 성공 거두십시오."
노 대통령 2008년 신년인사회 연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