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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노무현입니다'라는 말은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불과 2년 전까진 '5월 광주'를 떠올렸다.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하루하루 역사를 되짚다보면 기억해야 할 5월의 날들이 어디 광주와 노무현뿐이겠는가. 노무현으로 5월의 역사를 다 규정할 일은 분명, 아니다. 우리의 기억도 그렇다.

그렇다고, '5월은 노무현'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말장난 아니다. 지금도 온존하는 지역의 벽을 넘어서 저항과 해방이라는 보편의 가치로 '광주 정신'을 자리매김하고 진행형의 무엇으로 이어내야 하듯이 노무현으로부터 우리는 각자의 '고리'를 확인하거나 발견해야 한다. 그 고리를 하나하나 이어갈 때 부엉이바위에서 멈춘 궤적은 다시 움직이고 끝내는 하나의 정신이, 역사가 될 것이다. 끝났으나 다시 시작하는 지점, 5월의 노무현이다.

언젠가 썼듯이 그것은 성공의 환희보다 실패와 좌절의 상처가 더 깊기 때문에 도리어 보편적이다. 우러러볼 만큼 높지 않고, 눈 내리깔아야할 것처럼 위압적이지 않다.

노무현재단 사업 가운데 생전에 공적으로, 사적으로 주요하게 관계했던 인사들을 만나서 노무현과 함께했던 인연과 기억을 구술로 받아 정리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그의 생애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그를 따라갈 것이다.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그와 그를 말하는 사람의 삶이 겹치겠지만, 거기에는 아마도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교차할 것이다. 준비하고, 정리하고, 구술을 받기까지 결국 노무현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정작 그는 없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말이 되어 나올 뿐이다.

만나러 가지만 만날 사람은 이곳에 없는 그 역설이 슬프지만은 않다. 설렐 수도 있다. '재생'하는 그의 삶이 '한 위대한 인물의 경이로운 기록'은 아닐 거라 믿기 때문이다. 거기서 교차하는 적지 않은 부분은 시절과 상황을 달리할 뿐 다른 이들의 경험과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맞는 말'들을 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그 말대로 자신이 선택해야 할 때 닥치는 두려움, 자기 생각은 이러한데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할 때 혹은 그 반대일 때의 자책과 자괴감, 교과서에서 배운 올바름대로 현실이 흘러가주지 않을 때 밀려오는 분노와 회의, 문득문득 치솟는 사람살이에 대한 피로나 깊은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살아냈던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때론 비틀거리고 때론 간신히 서있으면서 지나온 궤적을 되돌아볼 때의 자부심이나 회한, 자기위로나 후회 등등. 그래서 난 그가 여기 없지만, 멀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만날 수 없지만,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렌다.

여전하다. 사무실에서건, 술자리에서건 다른 어디에서건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콧등은 시큰하고 저린 가슴에서 치밀어오는 뭔가를 다시 삼켜야한다. 그건 그것대로 남겨둔다. 하지만 만날 수 없는 그를 만나러 가듯이 언젠가는 노무현 없는 노무현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여태, 속 시원히 울어보지도 못했다. 허나, 그저 혼자만의 길로, 한낱 위인의 전기로 박제하는 눈물이라면 그치는 게 낫겠다. 실패, 좌절, 회한, 두려움, 후회, 반성, 위로 그리고 견딜 수 있게 만들 정도의 보람과 가치. 그 만큼의 성취를 이루어내는 건 대다수의 삶과 떨어져있지 않다고 믿는다. 그 속에서 또 다른 노무현 이야기가 생겨날 것이다. 노무현 없는 노무현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내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그렇게 한줌씩, 한줌씩 쌓여갈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

노무현 없는 노무현 이야기를 기다리며 이제 두 살이 된 '5월의 노무현'을 맞는다.




Posted by 한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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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향 2011.05.02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가 없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그와 인연이 있던 분들에게서 말이 되어 나올 그 무엇,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참, 글 옮겨가면서 댓글 달려했더니만 창이 열리지 않아 다시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애닯은 마음이 가득한 글도 그 마음까지도 고맙습니다

  2. miru 2011.05.04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2년 우리는 무얼 했을까. 앞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습니다. 누군가를 선봉에 세웠다면 그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당한 관심과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했는데..... 언제쯤 우리는 우리가 이만큼 이뤘노라고 그분앞에서 자랑스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요....

    ---------------
    재보선이 끝나고 분당의 승리보다 김해의 패배가 더 가슴아팠는데, 거기다 박원내대표는 소금을 뿌리네요.
    국민은 대권의 도구가 아닙니다. 저는 차라리 야권통합이 아니라 민주당 분당이 되었으며 좋겠습니다. 정치력 있고 정치력 좋아하는 분들은 따로 모여서 한나라당 2중대 등 전라도 한나라당이든 만들어 주시고 정말 올바로 정치하려는 분들까지 나쁜 물 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

  3. miru 2011.05.0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바람처럼와서 한숨(?)스런 소리만 늘어놓고 가서 죄송합니다.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네요^^;

    늘푸른 5월, 가정의 달 5월, 한줌님도 가족들도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4. 박미정 2011.05.09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월이네요
    작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둥지를 튼다고 이 좁은(?)나라를 구석구석 다니다가
    이제서야
    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5월이 와버렸네요.
    언제나쯤 5월이란 단어에 눈물 흘리지 않을지 자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님을 향한 그리움과 존경으로 고개를 숙여봅니다
    거긴 어떠세요...잘 지내시죠....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4월 24일 방송한 '공포의 집합'편이 논란이 되고 있나보다. MBC 뉴스는 25일 "해당 대학측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시사매거진 2580' 홈페이지에서 방송대본을 봤더니 이날(25일) 같은 방송사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오버랩됐다.

'공포의 집합'편에서 이 대학의 선배들은 후배들이 제대로 인사 안한다고 집합을 건다. "지금 너희 선배들 얼굴도 모르잖아. 나 1학년 때 다 인사했어. 심지어 동기들한테도 인사했단 말이야. 인사가지고 이야기 나올 시점 아니잖아." "너희들은 왜 인사 안하는데. 야, 너희들 내년이면 이제 이 자리에 서니까 인사 안 해? 이빨 보이고 웃는 자들은 낙인찍히는 거야. 박아." 이러면서 구타를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방송대본에 25일 사건을 겹쳐봤다. 내 머리에 떠오른 가상대본이다. 어디까지나 '가상'이다. 구타와 욕설은 뺐다.

#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집합 거는 선배들
- 지금 너희 경영진들 얼굴도 모르잖아. 나 신참 때도 다 개편했어. 심지어 연조 쌓이고 경영진 코드 안 맞아도 고분고분 개편 다 했단 말이야. 개편가지고 이야기 나올 시점 아니잖아, 지금. 노조는 그렇다고 쳐. 야.
- 예.
- 너희들은 왜 개편 안하는데. 신경X 나가고 손석X도 하차했는데 왜 개편 안하는데. 야.
- 예.
- 야, 너희들 내년, 내후년이면 어차피 윗사람들 다 바뀔 거라고 개편 안 해?
- 아닙니다.
- 나 오늘 이걸(각목) 받긴 받았는데 왜 프로그램에 말이 많이 나오느냐고. 제작자율성이니 뭐니 버티는 자들은 낙인찍히는 거야. 박아.

다시 '공포의 집합'편에서. "선배들이 잘해주니까 좋지? 우리는 항상 욕먹어, 왜? 잘 안 때리고 뭐라고 안 하니까." 이들은 때리면서 열 받는다. "나 때린다, 지금. 열 받게 하지 마. 내 성격 잘 알지? 똑바로 박아라." 가상대본에서도 몇 자 빼고는 거의 그대로다. '집합'에서는 구타가 계속될 뿐.

# 군기잡기 시작하는 무리들
- 선배들이 잘해주니까 좋지?
- 아닙니다.
- 우리는 항상 욕먹어, 왜? 한다고 하는데 방송독립이네, 제작자율성이네 시비가 끊이질 않으니까. 너희들까지 똑바로 안하면 우리가 선배들한테 까이잖아. 선배라면 누군지 알지?
- 네.
- 암말 않고 고분고분 잘해보자고 했어, 안했어? 그렇게 안 가르쳤냐고?
- 네
- 안 가르쳤니? 제대로 하자, 박아. 나한테 맞을 놈 없냐? 잘해주니까 기어올라요. 대가리 박아. 나 때린다, 나 때린다, 지금. 열 받게 하지 마. 내 성격 잘 알지? 똑바로 박아라.

'공포의 집합'편에 나온 선배들은 "성질대로 하면 학교를 못 다닐 거 같고, 참자니 너희들이 만만하게 볼 거 같고"라며 신세한탄 하더니, '교수님'까지 끌어들인다. "너희들 아무것도 아니야. 크게 될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인사만 봐도 알아. 교수님들한테도 인사할 때 똑바로 해. 교수님이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논리니 타당성이니 필요 없다. '시키면 그냥 해.'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헛갈린다.

# 정신교육 하는 선배들
- 안팎에서 공영성, 공공성 떠드는데 성질대로 하면 못 다닐 거 같고, 참자니 너희들이 만만하게 볼 거 같고. 먼저 내보낸 신 앵커, 100분 필기팀, 엊그제 PD노트팀 너희들이 도와줘야 돼. 너희들도 따라줘야지, 군기 안 잡히면 너희들이 혼나잖아. 너희들 아무것도 아니야. 크게 될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개편 때 뻣대는 것만 봐도 알아, 하는 행동만 봐도 안다고. 우리보다 높은 분들한테 인사할 때 똑바로 해. 거기서 '쪼인트' 까면 더 무서워. 거기서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그것 때문에 선배들 욕먹게 하지 마.


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맡아 첫 방송을 한 때가 2003년 10월 20일이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한차례 진행자 교체방침이 논란이 됐고, 때마다 교체될 거라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하차했다. MBC는 곧바로 "김미화씨가 지난 7년여 동안 성실하게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 온데 대해 감사한다"며 진행자 교체를 알렸다. 정말 그래서 감사했을까. 8년 남짓한 기간 동안 청취율, 광고 판매율, 진행자 선호도 등 각종 조사와 수치로 보더라도 프로그램을 손색없이 이끌어줘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만둬줘서?

강금실 법무부장관 시절 "코미디야, 코미디"하던 그의 말이 몇 년을 입안에 맴돌았었다. 세상을 참 제대로 담은 말로 들렸다. MB정부에서 새 말을 얻었다. 후배들을 두드려 패던 그 선배들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이 한마디로 시대를 제대로 꿰뚫었다.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4월 27일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한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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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와 친한 만큼은 백자 노래와 친하지 않은 부류에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백자 콘서트였다. 기억을 더듬으니 백자가 군 제대하고 만든 대학시절 공연이 첫 관람공연이었고 졸업 후 가진 화양리 어디에선가의 공연이 두 번째. 이번이 세 번째다. ㅎ. 정말 시차가 꽤 되는군(하긴, 내가 살면서 콘서트라는 걸 얼마나 갔다고).

암튼 당연히,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다. 그 시간이 백자에게는, 백자를 알아서 백자 노래와 연을 맺은 사람보다 백자의 노래를 먼저 접하고 백자를 안 사람들이 늘어나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이게 참 새삼스럽다.


공연 첫날 학전 앞에서 잠시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데 얼굴이 익은 사람 하나가 걸어왔다. '어라?' 서로 얼굴은 익는데 누군지 기억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나 어디어디에 있던 누구.' '아! 그때 그?' 서로 기자였다가 거의 15년 넘어 만난 사람이었다. 명함을 보니 지금은 꽤 큰 기업에 간부직함이 박혀있다. 내가 물었다.
 
"근데 백자랑은 어떻게 알아요?"
"아니, 나 백자라는 사람 몰라. 전부터 노래 들었었는데 좋아서 온 거야."

내 머릿속에는 당연히, 백자를 아니까 콘서트에 왔을 거라는 생각이 박혀있던 거다. 그래.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백자는 그만큼을 걸어왔다. 백자 노래를 드문드문 빌리자면 길을 따라서가 아닌, 길을 찾아서. 더딜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끈질기게.


그런 궤적이 노래가 되어 백자 콘서트 '봄날'에 모였다. 백자와 먼저 만났던 사람들도, 백자 노래와 먼저 만난 사람들도 함께 모였다. 평소 그의 노래에 대해 내가 어땠는지 내가 알고 백자가 아니 '하나하나 죽여주게 좋았다'고 하진 못하겠다. 전문적인 식견도 없으니 일일이 평할 그릇 역시 안 된다.

허나, 좋은 콘서트란 게 별건가. 노래를 새로 듣게 하고, 노래를 다시 듣게 하는 것. 그럼 좋은 콘서트 아닌가. 지금 내 이어폰에 그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만 봐도 '봄날'은 충분히 좋은, 성공한 콘서트였다. 한겨레 인터뷰를 보면 백자는 이런 고충을 토로한다.


"제 노래는 두 가지가 있어요. 내 생각에 공감하도록 하는 노래는 우리나라 활동으로 발산하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는 솔로 음반으로 발산하죠. 지금은 메시지와 스타일이 뚜렷하게 갈리는데, 그 간극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듣기에) 적어도 백자의 앨범에 그런 문제는 서로 삼투(渗透)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미 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다른 누가 만들고 불렀다면 그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일 노래가 그의 손을 타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먼저 떠난 그, 지금도 풀리지 않는 사회 모순에 이제는 무감한 누군가를 향한 손짓일 수 있다. 백자가 콘서트에서 잠시 소개했듯이 어느 후배는 '가로등을 보다' 앨범의 '어김없이'를 들으면서 5월 광주를 떠올렸다지 않은가.

반대로 (우리나라가 아닌) 백자의 노래가 사회 현실에 가닿았다 해도 거기서 비롯하는 슬픔이나 어떤 좌절감, 혹은 분노는 꼭 '전선'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 테다. 세대가 어떠하든 사람들은 벽 앞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핸드폰에 저장된 그 많은 전화번호 가운데 어느 하나 쉬이 누르기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비유를 더하자면, 살다보면 누구나 부엉이바위에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물론 더 이상은 몸 던지지 말고, 툭툭 털고 다시 걸어 내려와야 한다).

이런 정서의 '스펙'이야말로 길을 따르지 않고, 길을 찾아 걸어온 자가 가질 수 있는 힘이고 미덕이리라. 전후가 어떠하든 이별과 그리움을 노래하면서 '노란봉투'를 함께 부를 수 있는 가수가 이제, 그리고 앞으로도 몇이나 되겠는가.

말나온 김에, '노란봉투'는 2000년대의 '노동의 새벽'을 듣는 것 같았다. 거칠고 둔탁하면 어떤가. '노란봉투'는 백자가 버리지 못하는 굴레가 아니라 그의 원심력이 작동하는 시작점이다. 중심이다. 백자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걷는다면 자신이 고민하는 메시지와 스타일의 간극만큼 넓어지지 않을까. 그 간극이 백자 노래가 공명하는 너비가 되지 않을까. 백자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이제는 백자보다 백자의 노래를 먼저 안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규모와 쪽수를 떠나, 안팎의 그닥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과 세월을 헤쳐가면서 자기 무대에 선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콘서트 '봄날'에서 그의 노래도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하길 바란다. 백자가 걸어왔던 것처럼 길을 찾아서. 더딜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끈질기게. 그리하면, 그리될 것이다.


사족. 콘서트에서 백자는 자기의 꿈이 2집 앨범을 내는 것.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 다시 콘서트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1집도 지지자들이 십시일반 했는데 그 정도 꿈이라면, 2집 역시 못 만들 일이야 있겠는가. 그렇게 2집 내면 콘서트야 또 어떻게 안 되겠는가. 건투를 빈다, 백자야. 일단 소주나 한잔 하자.


                                     * '음악하는 백자' 카페 '박영신님' 사진입니다.
Posted by 한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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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향 2011.04.19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단장 하셨네요?
    앞으로 많은 글을 쓰시겠다는 각오?ㅎㅎ
    그렇게 알고 자주 오겠습니다